뇌파검사
경기가 잘 조절되고 있는지 알아보는 방법 중에서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뇌파 검사이다. 일반적인 뇌파 검사 이외에 비디오 뇌파검사가 있어서 뇌파가 잘 나타나지 않는 환자이거나 아주 심한 발작을 일으키는 중증의 간질 환자에게는 아주 유용한 방법이기도 하다. 은비의 경우는 어느 쪽이든지 뇌파 검사 결과는 별로 좋지 않았다 . 아이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에도 그랬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지 때문에 때로는 뇌파 검사에 대한 의혹을 버릴 수가 없었다(아이의 상태가 비교적 안정되어 있었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좋지 않게 나왔었다).
뇌파검사 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경련파가 나타나 있었는데 대발작, 소발작, 감각 운동 발작 등 마치 경련파의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7살 때 검사했던 뇌파검사 시에 특이한 소견이 하나 기억되는 것이 있다. 은비의 경련파는 흔하지 않게 매우 느린 커브와 이따금씩 뾰족 뾰족한 파동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는 것이다. 극서파(棘徐波, spike and slow wave complex)의 형태를 띤 이 파동은 한때 은비를 레녹스 가스토 증후군 (Lennox-Gastaut Syndrome) 환자로 진단 내리기도 했다.
뇌파 검사 시에 수면을 유도하기 위해서 사용했던 클로랄 하이드레이트(Chloral hydrate)는 아이를 재우는데 그다지 유용하지는 못해서 검사 시에 애를 많이 먹었다. 반면에 이 약은 하루만 지나면 그 성분이 다 배설되어 버림에도 불구하고 체내에 들어간 일주일 간은 진전 (tremor)이나 과다 행동이 많이 줄고 아이가 상당히 안정되어 보였으며 검사 시에는 효과적이지 않았던 수면 효과도 좋아서 잠의 양이 늘어나는 경향을 보였다. 때문에 경련도 많이 줄어드는 모습이었다(일주일이 지나면 다시 원 상태로 돌아갔다). 아이의 신경이 예민해지는 외부 환경에서라면 힘들겠지만 가정에서 아이가 잠을 잘 자지 못할 경우엔 때로 몹시 아쉬워지는 약이었다. 그러고 보니 은비는 주로 수면 효과가 있는 약제에 강하게 반응하는 현상을 보였던 것으로 기억된다(클로나제팜, 디아제팜, 클로랄 하이드레이트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