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에는 약한 아이
유달리 편도선이 큰 탓이지 사소한 감기에도 곧잘 고열로 치솟았으며 한 번 고열을 앓고 나면 얼마 동안은 진전이 많이 나타나고 경련도 자주 보였다. 특별히 질환이 없는 경우에도 은비는 이유 없이 시시때때로 고열이 자주 나곤 했다. 고열이 나기 전엔 아이가 항상 일정한 패턴의 행동을 보이기 때문에 곧 열이 오를 거라는걸 예측할 수가 있었다. 즉 열이 나기 직전 아이는 갑자기 혼자서 큰 소리로 떠들어댔는데 마치 신열에 들떠서 헛소리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행동은 열이 내리고 나서야 잠잠해졌다. 이 때에 손 발은 차가워지고 팔 다리는 새파랗게 변하면서 손가락을 빨거나 입맛을 다시는 소리를 냈으며 보통 한 시간 이내에 열이 치솟았기 때문에 아이가 그 같은 증상을 보이면 바로 해열제를 먹이는 것이 유용했다. 열은 보통 38도 이상 40도 넘게도 났는데 타이레놀(Tylenol)과 같은 헤열제로 비교적 잘 조절이 되는 편이었다(이 때 포카리스웨트와 같은 이온 음료를 많이 먹이는 것이 해열에 더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조기에 치료가 늦어지면 그 후유증이 심해서 쉽게 열도 떨어지지 않았으므로 항상 열이 나기 전 단계에 미리 약을 먹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일단 열이 오르고 나면 열이 떨어진 이후에도 후유증이 남아서 얼마 동안은 다소 산만해지고 진전도 늘어났으며 늘 유쾌했던 아이의 표정도 굳어있었다. 열 때문에 경기를 일으킨 적은 없었지만 열로 인해 아이의 생리적 리듬이 깨어지는 것은 틀림이 없어 보인다.
사춘기 이후부터는 그전부터 먹이던 경기 약의 양을 다소 줄였는데 체중이 더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상태에 별다른 변화가 없는 걸로 보면 전보다 상태는 많이 진정된 것 같다. 언젠가는 약도 완전히 끊을 수 있는 날이 오려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