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비의 성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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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비의 성장기

Arrow.png 20 년만의 진단 엔젤만증후군

 

  퇴원을 며칠 앞두고 니오미야 선생님께선 조심스럽게 은비의 상태에 대해 말씀을 꺼내셨다. 은비의 행동이나 움직임 그리고 아이의 병력에 이르기까지 엔젤만증후군(Angelman Syndrome)과 흡사하다는 것이었다. 척추 측만이 생긴 원인 중에 하나도 이것 때문인 걸로 추측하고 계셨다. 이 일은 이미 가와구찌 선생님과도 의논이 된 것 같았다. 15번 염색체의 작은 결실로 인해 발생한다는 이 병은 모계 유전에서 발생하는 확률이 많아서 더욱 더 말을 꺼내시는데 조심스러워 하셨다. 혹시나 부모의 마음이 이로 인해 다치지나 않을까 하는 세심한 배려심 때문으로 여겨졌다. 엔젤만증후군이라는 병에 대해 들었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 은비가 전형적인 뇌성마비 아이들과는 다른 점이 많아서 어린 시절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에도 의심되는 검사를 해보기는 했지만 별다른 이상 증후를 발견하진 못했었다. 그러나 이곳의 선생님은 아이를 관찰하고는 바로 그 병을 의심하셨다는 사실이 다시금 우리나라와 다른 차원으로 환자를 보고 계시는 선생님들에 대한 깊은 신뢰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선생님께 이야기를 듣고 엔젤만 증후군에 대해서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찾아 보았을 때 그 충격과 감동은 잊혀지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오랫동안 아이에 대해서 알 수 없었던 비밀의 문이 비로소 열리는 느낌이었다. 은비의 나이는 이제 우리나라 나이로 스무 살 이었다. 그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며 마치 순간 순간 시험에 임하듯 막다른 선택의 기로에 서서 여기까지 달려온 것만 같은데 그 모든 것의 원인이 바로 이 병에 있었다는 것이 정말 믿겨지지 않을 만큼 놀라웠다. 그것도 척추 수술을 위해서 이국 땅으로 날아와 이곳에서 알게 되었다는 것이 생각할수록 기막힌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스무 살이나 되어서 진짜 병명을 알게 되었으니 행운이라면 행운인 셈이다. 이와 같은 경우도 그리 흔한 일은 아닐 테니까. 최종 결과를 위한 혈액 샘플 검사를 의뢰한 채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한국에선 이 병이 아직 의료계에 조차 많이 알려지지 않은 탓에 대부분의 의사들이 잘 알지 못했다. 더구나 이 병을 검사하는 병원 조차도 드문 실정이었다. 북미에선 80년대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지고 연구되기 시작했다는 엔젤만증후군은 우리나라에서는 발생 빈도가 워낙 적은 탓인지 거의 알려진 바가 없었다. 특히나 은비와 같이 어느 정도의 성장이 진행된 아이(-?-)들의 경우는 설사 AS 환자일지라도 진단을 받기는 거의 불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발달 과정에 장애를 보이는 비교적 어린 아이들의 경우엔 염색체 검사를 통하여 조기 진단을 받는 경우도 요즈음 들어 꽤 되는 것 같다). 미국의 AS 재단은 활발한 정보수집과 모임을 통하여 AS 환자에 대한 수많은 자료들을 인터넷에 올려놓고 있지만 외국어인 까닭에 이에 대한 접근이 쉽지마는 않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사이트를 통해 별다른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실정도 아니어서 엔젤만증후군이 어떤 병인지 진단을 받고도 잘 모르는 경우가 허다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의 부모들에겐 안타까운 현실이었지만 답답한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의사들이 이 병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 주기를 기다리기보다는 먼저 부모가 나서야겠다는 소명감이 들었다.

 

  엔젤만 증후군은 전반적인 발달장애를 일으키는데 경련과 섭식 장애, 사시, 운동 실조로 인한 신체장애, 정신지체, 언어 장애, 감각통합기능의 장애, 척추 측만 등 다양한 장애를 유발시킨다. 물론 상태에 따라서 이중 몇 가지만 가볍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혹은 거의 모든 장애를 다 수반할 만큼 중증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은비의 경우는 불행하게도 거의 모든 장애를 다 구비하고 있는 중증 장애인이다. 아마도 엔젤만증후군을 앓는 환자 중에서도 손꼽힐 만큼의 여러 장애 -전형적인 -를 갖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늘 활달하다 못해 과하다 싶은 아이의 행동이나 깔깔대는 웃음 소리, 한 마디 말도 제대로 되진 않지만 자기가 필요한 말은 다 알아듣고 말이 아닌 몸짓으로 의사 표현을 하는 아이의 모습은 엔젤만 아이들의 특성 바로 그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병을 알게 됨으로써 아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좀 더 빨리 아이의 병에 대해서 알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많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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