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이 까다로왔어요
돌이 지나면서 정말 기적처럼 아이의 구토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
우유 대신 두유로 바꾸고 혹은 부드러운 빵(주로 카스텔라)이나 슬라이스 치즈로 식사를 대신했다(지금까지도 이 패턴은 변하지 않았다). 밥에 대해선 유난히 거부감이 심해서 처음 밥을 재대로 먹여본 것은 열 살 무렵이었다. 그것도 아주 소량으로 시작해서 길들여 나갔다.
은비는 먹을 때마다 혀를 내밀고 우유병을 빠는 특이한 버릇이 있었다. 이로 인해 빠는 동작이 원활하지 못해서 젖병 꼭지를 구멍이 큰 것으로 바꿔 주어야만 했다. 때문에 사레가 더 자주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빨대는 사용하질 못햇지만 우유병은 돌 무렵부터는 기대어 앉혀 놓으면 스스로 손으로 쥐고 먹을 수 있었다. 네 살까지는 이렇게 스스로 젖병을 쥐고 빠는 것이 가능했는데 그 이후 경련이 심해지면서 빠는 기능이 사라져버렸다(이때부터는 빨기보다는 주로 물어뜯기가 일쑤였기 때문에 젖병 꼭지가 아예 동강이 날 때가 많았다).
우유도 처음에는 찬 우유를 거부했지만 점차로 찬 것만을 먹게 되었고 더운 음료나 우유는 입도 대질 않으려 했다. 음식은 늘 유동식과 반 유동식의 형태로 먹었는데 조금이라도 씹어 먹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를 땐 가차없이 거부해 버렸다. 사춘기가 되면서 달라졌지만 야채는 씹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인지 좀처럼 가까워지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물론 고기도 씹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으니 좋아할 이유가 만무했다).
잘 씹지 못하는 원인 중에는 아이의 신체적인 구조 탓도 있었던 것 같다.
은비는 아래 턱과 위의 턱의 교합이 맞지 않았다. 정상적이라면 윗니가 아랫니를 덮고 있어야 하지만 은비의 경우는 아래 턱이 앞으로 튀어 나와있었기 때문에 입을 다물었을 경우엔 윗니와 아랫니가 나란한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특히 앞니로 음식을 절단해서 먹어야 하는 동작은 아주 미숙하거나 거의 하지 못했다.
항상 자신이 먹었던 것만 먹으려 하고 여러 종류의 음식을 골고루 먹기보다는 한 두 가지만을 집중적으로 선호하는 아이의 행동은 종종 자폐아와 같은 모습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굶기면 이런 습관들이 고쳐질 수 있다고 굶겨보는 방법도 권유를 받았었는데 하루를 굶어도 그다지 먹으려 하지 않았던 아이의 고집을 꺾진 못했었다. 전에는 먹는 것 자체에 그다지 흥미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에게 동기가 유발될 수 있는 강화제를 찾기가 참 힘들었다(자신이 좋아하는 몇 개의 음식에는 엄청난 집중력을 보였다. 이 때는 거의 씹지도 않은 채 급하게 먹어댔기 때문에 종종 캑캑거리며 토하곤 했다. 그러나 이때도 좋아하는 음식을강화제로 사용할 경우 차라리 거부하고 먹지 않는 고집을 부렸다).
최근 이 삼 년 사이(사춘기가 시작된 이후)에 아이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먹는 것에 대한 전반적인 흥미가 생겨난 것이 첫 번째이고(그 전에도 흥미라면 항상 있어 왔지만 전반적인 것에 대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아주 제한적인 것뿐이었다) 어떤 음식이든 맛을 음미할 줄 알게 된 것이 두 번째이다. 때문에 전엔 입도 대지 않았던 야채 종류에서부터 고기나 과일 등 비교적 골고루 음식을 먹을 줄 알게 되었다. 아이를 데리고 여행이라도 가려면 먼저 아이 먹을 것은 항상 따로 준비해서 싸 들고 다녀야만 하는 것이 준비 일과 중 하나였는데 이제는 같이 식당에 앉아서 먹어도 될 만큼 먹는 것에 대한 적응력이 좋아진 것 같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다. 지금은 뚱뚱하지는 않지만 한 동안은 정말 비만이었으니까).
은비는 지금도 우유를 마시지 않는다.
자기의 선호도와는 상관없이 우유를 먹으면 꼭 설사를 하든지 소화 장애를 보이곤 한다. 비교적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그다지 과자를 좋아하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음료(물, 포카리스웨트, 두유, 콜라)는 비교적 많이 마시는 편인데 아이가 복용하고 있는 경기약 중 오르필의 경우는 자주 갈증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