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비의 성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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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비의 성장기

Arrow.png 뇌성마비 은비

 

  은비는 제 때(혹은 조금 늦은 시기에) 배밀이까지는 했지만 그 다음부터는 진전이 없었다. 백일 무렵에도 제대로 중심을 잡고 앉을 수가 없어서 사진을 찍는데 애를 먹었다. 더구나 기대서 앉혀 놓았을 때 자연스럽게 다리를 구부리기보다는 뻗정다리처럼 다리를 뻣뻣하게 펴고 앉는 바람에 기대어서도 오래 버티지를 못했다. 때문에 아이가 편하게 앉을 수 있는 의자에 대한 관심이 이때부터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목 가누기는 거의 정상이었다. 그러나 이따금씩 잘 가누던 목이 옆으로 힘없이 기울어지곤 하여서 늘 마음 속에선 두려움이 남아 있었다.

 

  손으로 장난감을 쥐는 동작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 서툴러서 잘 잡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억지로 손에 쥐어 줄 때가 많았는데 그다지 오래 쥐고 있지는 못했었다. 가끔씩은 엄지 손가락이 안으로 들어가게 주먹을 쥐곤 했는데 정상적인 위치로 바로 잡아 주면 약지와 새끼 손가락이 반쯤 풀어진 형태로 전체적인 조임이 느슨해져 버렸다. 그러나 돌 무렵엔 젖병도 쥘 수 있을 만큼 쥐는 행위는 많이 좋아졌다.

 

  지금도 손가락을 사용하는 아이의 행동에는 두서가 없다.

 

  대근육을 사용해서 물건을 들어올리는 동작에 있어선 무거운 것까지도 거뜬히 들어올릴 만큼 기운이 대단한 반면에 숟가락을 사용하거나 과자를 집어서 먹는 동작 등에 있어서는 정교함이 떨어진다. 손가락이나 손목의 움직임에 있어 세밀함을 요하는 소근육 동작은 많이 떨어지는 것 같다. 워낙 발육이 늦되다 보니까 걱정스럽기는 했지만 서울의 유명 대학병원을 다 돌아다녀도 그 동안 아이가 제대로 성장을 할 만큼 건강하지 못했던 것이 원인이 될 수 있다며 오히려 극성스런 부모라는 핀잔만 들었을 뿐이었다.

 

  6개월이 넘어서도 전혀 길 생각을 하지 않던 아이는 조금이라도 긴장을 하게 되면 다리가 마치 나무 토막처럼 뻣뻣해지면서 뻗히는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 때 양 다리는 서로 X자로 꼬여졌고, 뒤꿈치는 까치 발을 든 상태가 되었는데 때로는 손과 발에서 가볍게 진전(tremor: 떨림) 현상이 계속되었다

 

  9개월까지도 정상적인 아이라고 진단되었던 아이는 13개월 때 S대 병원 정형외과에서 뇌성마비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진단을 받게 되었다. 아이가 커서 장애가 나타나면 그 때에 가서 수술로 교정을 하는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이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

 

  아이를 위한 치료 방법을 모색하던 중에 신문 칼럼을 통해 처음으로 소개된 보이타 (Vojta) 치료에 대한 정보를 들을 수가 있었다. 뇌에 장애를 입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병원에서 입원 치료 시에 부모들에게도 직접 아이에 대한 치료 방법을 가르쳐서 집에서도 계속 치료가 이루어지게끔 한다는 것이었다. 초창기의 보이타 치료는 조기 치료를 잘 하면 뇌성마비의 경우도 완치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 당시에 이 치료법을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했던 선생님이 C병원에 계셨기 때문에 주로 C병원에서 입원과 치료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은비도 처음(맨 처음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보이타 치료를 받았던 초창기 멤버 중의 하나이다(생후 13개월: 1986년 7월). 그러나 은비는 그 때 외부의 접촉이나 자극에 지나치게 민감해서 긴장을 할 때마다 사지가 뻣뻣해질 뿐만 아니라 치료에 대한 거부감마저 강하게 드러냈다. 치료를 시작하면 몸통을 마치 활처럼 뒤로 젖히면서 뻗대기 일쑤였다. 담당 치료 선생님 말에 의하면 아이의 기운이 대단해서 조금만 더 커도 엄마가 시켜줄 수 없을 거라고 했는데 그 말은 결국 사실이 되었다. 정확한 자세와 위치에서 자극점을 만들어 아이의 반응을 유도하는 보이타 치료는 잠시도 가만히 있는 것을 못 견뎌 하는 아이의 특성상 어려움이 많이 따랐다. 더구나 옷을 벗기고 정확한 위치에서 자극을 주어야 하는 치료 과정은 아이에게 치료에 대한 공포심을 더욱 가중시켰다. 치료를 받는 도중에 발작을 일으킨 적은 없었지만 나중에 치료 방법을 보바스 치료로 바꾼 뒤에도 좀처럼 치료에 대해 경계심을 풀지 못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13 개월 때 보이타 치료를 받기 위해 입원을 했을 때 아이에게 내려진 진단은 뇌성마비 (CP) 중 경련성 사지마비였다. 이 때에 다리는 긴장도가 심했던 까닭에 왼쪽 고관절에서 아탈구 현상이 조금 보였고 오른 쪽 갈비뼈가 약간 앞으로 튀어 나와 있었다. 가슴이 튀어 나오는 것은 아이의 호흡과도 관련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 태어나서 아이들은 횡경막 호흡을 주로 하지만 점차로 흉식 호흡이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은비의 경우는 여전히 횡경막 호흡이 없어지질 않고 계속되어 변형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보이타 치료는 호흡을 좋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아이에게도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 선생님의 견해였다.

 

  치료를 시작하고 처음 얼마 동안은 갑자기 아이가 뒤집기를 하면서 치료의 효과를 가시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점차로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며 악을 쓰고 울기 시작하면서 보이타 치료에 대한 한계를 절감해야 했다. 집에서는 경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네 살까지는 나름대로 치료를 감행했었다. 그러나 경기하는 아이에게 보이타 치료가 적합하지 않다는 선생님 말씀을 듣고는 보이타에 대한 미련을 버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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