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안자는 천하장사
은비는 잠자는 시간이 워낙 짧고 두서가 없어서 밤이든 낮이든 제가 자고 싶은 시간이 바로 취침 시간이었다. 흔히들 잠이 없는 아이들을 가리켜서 어른들은 백일이 지나면 돌아온다고 하고 그래도 안 되면 돌이 지나면 돌아올 거라고들 말씀하셨지만 은비의 경우는 열 살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남들 다 자는 야심한 밤에 잠 한 번 푹 자보는 것이 소원이었을 만큼 잠을 자지 않는 것은 아이를 키우는데 가장 극복하기 힘든 부분이기도 했다. 너무 움직임이 없어도 피곤하지 않은 탓에 잘 자지 못했지만 활동량이 많아서 지나치게 피곤했을 때도 역시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키우면서 깨닫게 된 것이지만 은비의 경우는 안정된 상태에서 스스로가 편안함을 느낄 때 비교적 잠을 잘 자는 경향이 있었고 낯선 환경이나 안정된 분위기가 아닌 장소에선 결코 잠을 자는 법이 없었다. 때문에 휴가라도 받아서 어딘가를 가게 될 때엔 으레 밤을 새울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소리에도 워낙 민감한 편이라 작은 소리에도 자다가 귀를 쫑긋 세우며 벌떡 일어나는 일이 다반사여서 한 동안은 아이가 잠자는 시간 동안은 TV 조차도 켜질 않았다.
지금도 은비는 모든 식구들을 다 재우고야 잠이 드는 고약한 습관이 있다. 경기를 한동안 너무 심하게 했기 때문에 따로 재울 수가 없어서 같이 자게 된 까닭도 있지만 혼자서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버려서 아이와 함께 자고 함께 일어나야만 나름대로 충분한 수면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밤에는 잠을 자야 한다는 수면 리듬이 생긴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학교에 다니고 낮에 활동하는 양이 많아지면서 점차로 아이에게도 밤이라는 개념이 존재하게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