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먹은 경기약 , 페노바비탈
13 개월 되던 해(1986년 7월) 뇌성마비로 진단 받고, 보이타 치료를 받기 위해 입원을 했을 때 몇 가지 검사도 같이 이루어졌다.
뇌파 검사(EEG)와 컴퓨터 단층촬영(CT)이 그것이다.
그때까지는 특별히 아이가 경기를 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의심되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경기였다고 단정할 만한 확신이 없었다). 그러나 뇌파 검사 상에는 비록 지금은 경기를 하지 않고 있어도 앞으로는 할 가능성이 잠재된 뇌파가 보인다는 소견이 나왔다. 따라서 경기 약을 복용해야만 한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은비는 그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중지한 적이 없이 18년 이상을 경기 약을 복용하고 있다.
처음 복용했던 경기 약은 페노바비탈(Phenobarbital : 상품명 Luminal)이었다.
경기약에 대한 별다른 지식 없이 먹이기 시작했기 때문에 약이 어떤 부작용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훨씬 뒤의 일이었다. 다만 한 번 먹이기 시작하면 설령 그 사이에 경기를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최소한 3년은 먹여야 한다는 것과 약을 끊게 될 때에는 의사와의 협의 아래 서서히 끊어야 한다는 사실을 주지 받았을 뿐이다. 경기를 하지 않는 아이에게 약을 먹이면서 그 약이 때로 걸러 가며 먹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었다. 따라서 일정 양의 약을 받아서 아이의 컨디션을 보아 가며 줄였다 늘였다 하기도 하고 감기라도 걸려서 먹여야 될 약이 너무 많다 싶으면 때로 건너 뛰기도 몇 번을 했다. 후에 약이 떨어져서 다시 약을 타올 때까지 하루를 꼬박 먹이지 않았던 적이 있었는데 이 때문에 경련이 더 심해지면서 대발작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페노바비탈은 그 당시 은비와 같은 장애아들에게 흔하게 처방되던 경기약이었다. 약을 먹으면 손 발이 떨리는 진전이 줄어드는 반면에 성격이 더 과격해지고 항상 들떠있는 아이를 느낄 수 있었다. 때론 쉽게 흥분하고 주변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긴장된 상태를 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본격적인 경련이 시작되었던 네 살 전까지는 2년 가량을 계속해서 먹였던 약이기도 하다.
컴퓨터 단층 촬영 결과에선 아이의 뇌가 전체적으로 위축되어 쪼그라든 상태(때문에 정상적인 아이들보다 뇌가 덜 발달되고 작다고 했다)인데다 뇌간에는 약간의 물이 고여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때 선생님은 말을 하지 않았었지만 전두엽의 대뇌 피질도 광범위하게 손상을 받았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때문에 아이의 지능은 그다지 발달하지 못 할거라는 것이 의학적인 소견이기도 해서 엄청 좌절했던 기억이 난다.
은비는 유난히도 낯가림이 심해서 그 당시에는 데리고 다닌다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특히나 낯선 환경이나 안정되지 못한 분위기에서는 부적응 행동이 심해서 병원을 다니는 것도 큰 맘 먹고 나서야 할 만큼 쉽사리 엄두조차 낼 수가 없었다. 저 혼자서 뒹굴 뒹굴 잘 놀다가도 집안 식구들이 아니면 이내 초긴장 상태로 돌변해서 가뜩이나 뻣뻣한 몸이 더 뻣뻣해지고 쥐어 짜는울음 소리로 손가락만 빨아대며 상대방의 눈조차 마주치려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사회성이나 환경에 대한 적응력, 대인관계 등 모든 것이 그 당시의 은비에게는 결여되어 있었다.